창녕 관동 조우희 묘 문석인 2구
창녕 관동 조우희 묘 문석인 2구
(昌寧 冠洞 曺遇禧 墓 文石人 2軀)
경상남도 기념물 제60호(지정일 1983.08.06)
소재지 : 경남 창녕군 남지읍 성사리 조우희•조익수 묘역
조성시기 : 고려 말-조선 초
관동마을 서쪽 서재골로 가는 길 우측의 대나무 숲 뒤편 산 능선에는 창녕 조씨(昌寧曺氏) 분묘 2기가 동향으로 놓여있다. 다른 분묘에 비해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인 원형분과 방형분이 함께 있으면서 분묘석상과 더불어 묘갈, 향로석 등 석물들을 잘 간직하고 있기에 관동마을에서는 조릉(曺陵)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이곳 분묘의 피장자들은 고려 후기에 판전의사 좌시중을 지낸 창성부원군 조우희(曺遇禧)와 조선 초기 경상도 병마절도사 초토안무사를 지낸 조익수이다. 조우희는 고려 말 이성계 장군과 함께 위화도 회군으로 유명한 창성부원군 조민수(曺敏修) 장군의 아버지이며, 조익수는 조 장군의 바로 아래 동생이다. 조우희의 아버지는 조원주(曺元柱)이다.
조우희 묘는 산 능선의 위쪽에 있는데 원형분이고, 아래쪽 조익수 묘는 방형분으로서 기단석은 잘 다듬어진 장대석으로 방형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성토하여 봉분을 만든 고려시대 분묘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주목되며, 경상남도에서는 이 묘역을 기념물 제60호로 지정하여 관리․보호하고 있다.
조우희 묘에는 묘갈(墓碣)은 없으나 봉분 전면에 설치된 화강암제 월석에다 내용을 간결하게 새겨놓았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월석의 향 우측면에는 “麗朝正順大夫判典儀寺事贈左侍中府院君昌寧曺公諱遇禧之墓”, 좌측면에는 ‘配贈貞敬夫人星山李氏墓有昌寧龍藏寺西子坐’ 라고 새겨 놓았다.
봉토 둘레는 약 14m 정도이고, 높이는 1.5m이다. 넓고 얇은 상석과 높은 편의 향로석(?)이 앞에 놓여있으며, 좌우에는 문석인이 세워져 있다,
문석인의 높이는 약 1.2m 이고 오랜 세월 풍우로 인해 마멸이 진행된 상태를 보인다. 그리고 두 상 모두 顔面部가 부분적으로 훼손되었지만 전체적인 조각의 경향을 파악하는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이며, 제작시기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