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관동 조익수 묘 석인상
창녕 관동 조익수 묘 석인상
(昌寧 冠洞 曺益修 墓 石人像)
경상남도 기념물 제60호(지정일 1983.08.06)
소재지 : 경남 창녕군 남지읍 성사리 조우희.조익수 묘역
제작시기 : 조선 전기
조익수(曺益修)는 조선 초기에 경상도 병마절도사 초토안무사를 지낸 武人이다. 묘 앞 좌측에 龜趺와 履修를 갖춘 ‘曺益修墓’ 라 새겨진 묘갈이 세워져 있는데, 碑身은 높이 120cm, 너비 50cm, 두께 21cm이며, 龜趺는 길이 130cm, 높이 20cm, 폭 67cm이다. 履修는 높이가 60cm이며 荷葉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墓碑의 전체 높이는 약 2m이다. 碑身의 전면과 후면에는 조익수 생전의 행적과 증직내용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風雨로 인한 마멸로 인해 판독이 어려운 편이다.
묘 앞 좌측과 우측 편에는 石像이 세워져 있는데, 일반적인 문•무석인의 형상과는 달리 佛敎의 彌勒佛 또는 仁王像을 연상시키는 石像을 세워놓아 눈길을 끈다. 이와 같이 묘역에 佛像을 배치한 예는 전북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소재 潭陽鞠氏先山墓域의 石佛 등이 있다.
비교적 같은 모습으로 새겨진 두 석상은 전체적으로는 여윈 편의 석주형 몸체에 마치 佛法 수호신인 인왕상 또는 미륵불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보인다.
頭像을 살펴보면 여래상의 육계와 같은 묶은 머리에 큰 눈과 함께 코는 주먹코의 형상으로 새겼다. 코 밑에 인중이 표현된 일자형의 입은 아랫입술이 보다 두텁게 표현되었으며, 양 옆의 두 귀는 얼굴 면에 비해 길이가 길고 살이 오른 두텁고 투박한 느낌을 준다.
목은 굵고 강직해 보이나 어깨 넓이가 좁은 편이어서 건장함이 감소된 모습을 느끼게 하며, 두 팔은 팔꿈치 부분을 약간 굽혀 허리부분에 붙인 형태로 새겨놓았으며, 두 손은 손바닥을 펴고 있거나 주먹을 쥐고 있는 듯한 형상을 보인다. 옷은 풍화로 마멸이 심한 편이어서 자세히 살펴 볼 수는 없으나 통견식의 반팔소매를 가진 옷을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두 석상은 형상은 물론 조각기법이 같은 경향이어서 허리 아래로는 세부묘사를 생략하여 마치 하나의 석주와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지금까지 살펴 본 두 석상은 석주형의 몸체에 육계의 표현 및 수인 등의 요소에서 조선시대에 널리 조성하여 세웠던 미륵불의 형상을 연상시켜주는 상이어서 특히 주목되며, 제작 시기는 조선 전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