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문화재/石碑, 龜趺

성주 대산리 돈재 이석문 신도비

정태욱 2018. 10. 10. 17:35
















성주 대산리 돈재 이석문 신도비

(星州 大山里 遯齋 李碩文 神道碑)


비지정 문화재

소재지 :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299, 비각

제작시기 : 1909

 

성주군 대산리 한개마을 북비고택 맞은편에는 돈재 이석문 신도비(遯齋 李碩文 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이석문(李碩文, 1713-1773)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월봉 이정현(月峯 李廷賢, 1612-?)의 후손으로 이신(李紳)의 아들이며 한개마을에서 출생하였고 자는 사실(士實). 호는 돈재(遯齋).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영조 15(1739)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고, 영조 38(1762) 휘령전(徽寧殿)에 왕을 호종하여 간신(諫臣)을 불러들이고 세손(世孫 : 뒤의 정조임금)을 업고 사도세자(思悼世子)의 구명을 꾀하다가 벼슬에서 쫓겨나 고향 집으로 돌아와 북쪽으로 대문을 내고 대궐을 향하여 매일 새벽 재배(再拜)하니 사람들은 그를 북비공(北扉公)이라 불렀다고 한다. 정조(正祖) 때에 문숙공 채제공(文肅公 蔡濟恭)으로 인하여 그 손자 규진(奎鎭)이 왕을 입시하니 "너의 조부의 세운 공이 참으로 갸륵하다'고 하고 돌아간 후 병조참판의 벼슬을 내리고 光武 3(1899)에는 사도세자를 장조(莊祖)로 추숭(追崇)하고 고종이 선생의 충성을 표창하여 제관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고 종손에게 벼슬을 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