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석조불상/창녕군

창녕 무심사 석불좌상

정태욱 2012. 9. 7. 19:22

 

 

 

 

 

 

 

 

 

창녕 무심사 석불좌상

(昌寧 無心寺 石佛坐像)

 

비지정 문화재

불상높이 53.5cm, 불신 34cm, 어께 폭 15.5cm, 무릎 폭 27cm

소재지 : 경남 창녕군 이방면 손실길 62-215, 무심사

조성시기 : 고려시대


창녕군 이방면 송곡리 소재 無心寺에는 54cm 크기의 돌에 새겨진 如來坐像奉安되어 있다.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磨滅이 진행된 형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전반적인 조각양식을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는 편이다.

 

불상은 화강암 재질의 석재에 佛身臺座, 光背를 한 돌에 중부조 형식으로 새겼는데, 光背頭光 좌측부분과 대좌의 앞면에 약간의 손상을 입은 것 외에는 대체로 양호하며 보존상태도 좋은 편이다.

 

佛像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風化磨滅이 진행된 상태이지만 조각솜씨가 섬세하여 상과 잘 어울리고 있으며, 手印降魔觸地印하고 있어 釋迦牟尼佛로 추정된다. 法衣右肩偏斷式이다. 법의에 새겨진 옷 주름은 왼쪽 어깨에서 시작되어 가슴아래의 복부와 왼쪽 팔의 손목부분에 나타나며 여려 겹으로 밀집된 특징을 보여준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佛頭에서 얼굴은 方形으로 살이 올라 조금 통통한 편이고, 머리는 소발(素髮)이다. 머리 위의 肉髻는 높은 편으로 머리와 구별이 분명하다. 얼굴의 세부 표현에서 두 눈은 마멸현상으로 조금 損傷을 보이지만 半眼으로 가늘게 표현된 두 눈의 양쪽 끝단이 살짝 위로 올라가 있다. 오뚝하게 새겨진 코는 얼굴에 비해 약간 큰 편이고, 인중이 표현된 입은 작은 편이나 마멸이 심하여 윤곽만 살펴 볼 수 있다. 얼굴에 비해 좁은 편인 이마에는 白毫孔이 있다. 얼굴의 양 옆에 새겨진 두 귀는 길이가 길어서 양 어깨에 닿아있다. 이러한 불상의 印象은 이로 인하여 정신성이 감소된 근엄한 표정을 보여준다. 목은 길이가 짧은 편으로 三道의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시대 전기에 조성된 불상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양식이다.

 

佛身의 표현에서는 무릎의 폭에 비해 어깨의 폭이 좁은 편이서 짧은 목과 함께 위축되어 보이는 印象을 주며, 석굴암 본존상 등 통일신라시대의 佛像彫刻樣式에서 보이는 당당함이 감소되었다.

두께가 얇은 편인 法衣의 왼쪽 어깨부분에서 형성된 옷 주름은 비슷한 간격으로 평행을 이루며 階段式으로 처리되어 손목부분까지 새겨져 있다. 가슴부위를 많이 드러낸 법의에도 굵은 두 줄의 융기선으로 주름을 표현하였다. 결가부좌하여 앉은 두 다리의 발목부분에는 희미하지만 2-3줄로 추정되는 음각으로 새겨진 주름이 있다. 手印降魔觸地印하고 있는데, 특히 다른 불상에 비해 오른손이 무릎 아래로 많이 내려온 특징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리고 오른팔은 법의을 걸친 왼팔에 비해 살이 오른 굵고 비대한 편이어서 균형이 맞지 않으며, 살이 올라 조금 아래로 쳐진 듯 한 가슴부위와 함께 전체적으로 육감적인 자태를 보여준다.

 

臺座는 석재의 면을 적절히 이용한 方形의 것으로서 부분적으로 약간 손상을 입었으며, 전반적으로 마멸이 심한 편이다. 문양은 전면과 측면에 음각선으로 꽃잎이 큰 앙련을 새긴 흔적을 희미하게 살펴 볼 수 있다.

 

光背는 통일신라시대 아래로 석불좌상에서 흔히 보이는 두광과 신광의 경계부위가 살짝 패인 만곡(彎曲)된 배 모양의 舟形擧身光背이다. 광배에 새겨진 문양은 전체적으로 마멸이 심한 편이어서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파악된다. 우선 두광에는 圓形의 음각선이 한 줄 새겨져 있으며, 그 내부에는 蓮花文을 새긴 흔적이 보인다. 원형의 음각선 바깥부분과 신광 테두리 부분에는 火焰文으로 장식된 흔적이 살짝 보이고 있어 前代의 보편적인 경향을 따르고 있음을 살펴 볼 수 있다.

 

무심사 석조여래좌상은 비록 크기는 작은 편이나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는 상이다. 그리고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오랜 기간 風化로 인한 磨滅이 심한 편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계승하여 형식화 되어가는 과정의 경향을 보여주는 상이다. 따라서 이 불상은 오른팔이 비대해지고 목이 짧고 어깨의 폭이 좁아 위축되어 보이는 등 조각기법적인면에서 前代에 비해 쇠퇴한 시기의 경향을 보여주는 고려시대의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중요한 여래좌상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