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문화재/陵墓 石人像

경주 황정 묘 문석인 1쌍

정태욱 2012. 11. 21. 19:53

 

 

 

 

 

 

 

 

 

 

 

 

 

경주 황정(黃玎) 묘 문석인

 

비지정 문화재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서악동 산 92번지

제작시기 : 조선시대

 

문인석과 무인석은 무덤을 지키기 위해 그 앞에 세워지는 돌로 만든 인물상이다. 문인석은 문관 복장을 하고 두 손을 공손히 모아 홀()을 들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어, 갑옷을 입고 칼을 들고 있는 무인상과는 차이가 있다.

문인석의 지물인 홀은 원래는 임금 앞에서 교명(敎命)이 있거나 계백(啓白, 아룀)할 것이 있으면 그 위에 써서 비망(備忘)으로 삼았던 것인데, 왕은 옥으로 만든 홀, 즉 규()를 잡고 대부(大夫)나 사()는 홀을 들었다. 이러한 홀은 신라가 당제(唐制)의 관복을 입은 뒤로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지만, 후세에는 다만 의례적인 것이 되었다.


홀은 길이 약 60, 너비 약 6크기의 장판인데, 조선시대에는 조복·제복·공복 차림에 1-4품관은 상아로 만든 상아홀, 5-9품관은 괴목으로 만든 목홀, 향리는 공복에만 목홀을 갖추었다. 이와 같은 형상의 문인석은 처음에는 왕릉에서부터 시작해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양반 사대부의 무덤 앞에도 세워지게 되었다. 왕릉에는 문인석과 무인석이 각각 한 쌍씩 능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것에 비해 사대부의 무덤에는 주로 문인석 한 쌍이 세워져 있다.



평해황씨(平海黃氏) 불권헌공파(不倦軒公派)의 시조인 황정(黃玎, 1426-1497)은 자는 성옥(聲玉), 호는 불권헌(不倦軒)이다. 그는 성종 5년(1474년) 49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이후 여러 벼슬을 지냈으며, 평소에 청렴하였고, 경학(經學)에도 밝았다고 한다.


황정의 묘는 도봉서당 바로 뒤편 선도산 기슭에 있는데, 헌안왕릉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무덤이 그의 것으로 앞쪽에 순박한 모습의 문인석 한 쌍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