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석조불상/경주시

경주 남산 미륵곡 보리사 석조여래좌상

정태욱 2012. 9. 5. 19:48

 

 

 

 

 

 

 

 

 

경주 남산 미륵곡 보리사 석조여래좌상

(慶州 南山 彌勒谷 菩提寺 石造如來坐像)

 

 

寶物 제136호(지정일 1963.01.21)

크기 : 전체높이 436cm, (佛身 : 244cm, 臺座 : 166cm, 光背 : 270cm)

光背背面 線刻藥師如來坐像 높이 : 50cm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산 66-1번지 보리사 경내

조성년대 : 통일신라시대(8세기 후반)

 

 

東南山 彌勒谷 菩提寺 法堂의 남쪽언덕에는 육중하고 웅장한 바위를 배경으로 光背와 臺座를 구비한 완전한 형상의 石造如來坐像이 蓮花臺座 위에서 동쪽을 바라보면서 微笑를 짓고 앉아있다. 이 佛像은 慶州 南山에 現存하는 丸彫形의 佛像 중 彫刻技法面에서 가장 우수한 像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菩提寺는 四千王寺址 맞은편의 花郞敎育院․統一殿 가는 길로 들어서서 花郞橋를 건너면 오른편으로 마을 입구의 小路가 나오면서 案內標識板이 세워져 있다. 마을 앞쪽으로는 南川이 흐르고, 마을 왼쪽으로는 林業試驗場이 있어 동네가 온통 푸르다. 林業試驗場 옆과 뒤편은 대나무 숲인데, 옆으로 난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약 250m정도 걸어서 산등성이로 올라가면 比丘尼들이 수도하는 菩提寺에 닿는다. 이 寺刹은 近來에 지은 大雄殿을 비롯하여 鐘閣과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現在에도 佛事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南山의 寺刹 중에서는 그 규모가 가장 큰 편에 속한다. 그리고 三國史記에 보면 憲康王陵과 定康王陵의 위치를 말할 때 ‘菩提寺의 동남쪽’ 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菩提寺는 新羅時代의 유서 깊은 寺刹임을 살펴 볼 수 있다.

石造如來坐像은 현재 大雄殿 왼쪽 편 언덕 위의 露天에 모셔져 있다. 전반적으로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에 磨耗가 심한 편이고, 佛頭 중 목 부분이 깨어져 損傷을 보이고 있으며, 또한 光背의 頭光 부분도 깨어져 일부가 없어진 것을 붙여놓았다. 그러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佛像을 살펴보면, 그 조각솜씨가 섬세하여 像과 잘 어울리고 있으며, 手印은 降魔觸地印을 結하고 있다. 法衣는 通絹式으로 양어깨를 덮고 있으며, 가슴부분에 승각기와 띠매듭이 보인다.

像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方形의 얼굴은 살이 올라있지만 풍만하지는 않으며, 반쯤 감은 눈과 얼굴에 비해 크게 표현된 코, 명확한 입과 함께 은은한 微笑가 묘사되어 있다. 조용히 발산되는 이 佛像의 微笑는 8세기 新羅人의 정신적인 昇華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비범한 彫刻 솜씨를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머리는 羅髮形이고 머리 위의 肉髻는 높게 솟아 크게 표현되었다. 양쪽 귀는 길게 어깨 위까지 드리워졌으며, 목에는 三道가 새겨져 佛身과 부드럽게 연결되었다.

佛身에서 어깨는 약간 움추렸으며, 佛頭에 비해 어깨의 폭이 좁아 조금 약하게 보이는 점에서 아쉬운 감을 든다. 가슴은 풍만한 편이지만 人體의 屈曲表現이 약하여 평판적인 면이 엿보인다. 이 점은 身體의 比例와 함께 8세기 佛像의 이상형으로부터 9세기 樣式으로의 移行을 豫見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降魔觸地印을 結한 양쪽 팔은 약간 연약하게 표현되었으며, 하체는 다소 경직된 느낌을 준다. 通絹式의 法衣는 축 늘어져 있으며, 옷주름은 양팔과 가슴부분 그리고 結跏趺坐하여 앉은 양다리의 발목을 중심으로 한 무릎 아랫부분에 여러 겹으로 밀집된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가슴부분에서는 승각기가 표현되어 있으며, 띠 매듭의 흔적이 엿보인다. 전반적으로 法衣의 옷 주름 표현에서는 石窟庵 本尊像과 같은 탄력적이고 간결한 수법은 다소 사라지고 섬세하게 표현되는 등 축 늘어진 주름에서 量感의 감소와 함께 보다 진전된 경향을 보여준다.

臺座는 上․中․下臺石으로 구성된 典型的인 統一新羅時代의 8角 蓮花臺座樣式을 보여준다. 圓形의 上臺石은 仰蓮石으로서 둘레에 16葉의 重辦蓮花紋이 새겨져 있는데, 연꽃잎의 끝단이 다소 날카롭게 표현되었다. 中臺石은 8角으로 모서리의 각 면에 隅柱를 세우고 있는 전형적인 8세기의 경향을 보여준다. 下臺石에는 複辦의 蓮花紋 8葉이 새겨져 있으며, 그 아래로 2단의 地臺石이 놓여져 있다.

光背는 舟形擧身光으로 上部가 절단되어 損傷을 입었으나, 일부분이 없어진 채 지금은 붙여놓았다. 전반적으로 2줄의 굵은 융기선으로 頭光과 身光을 구분하였는데, 융기선상에는 12송이의 연꽃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의 빛이 비치는 곳은 어디나 연꽃처럼 깨끗한 淨土世界가 된다는 의미에서 표현된 것으로 생각된다. 융기선 안에는 寶相․唐草紋이 화려하게 彫刻되었고, 그 사이에는 頭光 부분에 化佛이 3軀, 身光 부분에 化佛이 아래위로 4軀가 새겨지는 등 도합 7軀가 배치되어 있다. 光背面에 새겨진 작은 化佛은 부처님의 빛이 비치는 곳마다 그곳에 부처님이 계신다는 뜻으로 보여진다. 頭光과 身光의 외부 주위에는 부처님의 위력을 나타내는 火焰紋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光背 뒷면에는 藥師如來坐像이 線刻되어 있다. 藥師如來는 東方琉璃光世界의 敎主로서 大醫王佛 이라고도 하며, 衆生의 疾病을 치료하고 의복과 음식 등을 만족케 하는 등의 일을 하는 부처님이며, 藥師如來의 分身으로서 12大願에 따라 나타나는 12神將을 거느린다.

佛像은 높이가 약 50cm로서 가는 陰刻線으로 표현하였다. 두 겹으로 핀 仰蓮의 蓮花座 위에 結跏趺坐의 자세로 앉아 오른손은 어깨높이까지 든 施無畏印의 手印을 結하고 있으며, 왼손은 藥盒을 들어 무릎 위에 놓은 형상을 보여주므로 藥師如來임을 짐작케 한다. 전반적으로 얼굴은 둥근 편이나 磨滅이 심하여 표정을 자세히 살펴 볼 수 없다.

佛身의 뒤편에는 圓形의 頭光과 함께 橢圓形의 身光이 새겨져 있고, 그 외부 둘레에는 火焰紋이 새겨져 있다. 蓮花臺座 밑으로는 피어오르는 듯한 雲紋이 새겨져 있어 天上인 東方琉璃光世界에 부처님이 앉아 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이와 같이 佛像의 光背 뒷면에 또다시 佛像 등을 새긴 예는 극히 드문 편이며, 이러한 形式은 慶南 密陽의 舞鳳寺 石造如來坐像(寶物 제493호)의 光背, 慶北大學校 博物館 所藏 石造如來坐像 光背와 더불어 忠北 槐山 覺淵寺의 石造毘盧舍那佛坐像(寶物 제433호)의 光背에서도 볼 수 있어 주목되어진다.

菩提寺 石造如來坐像은 전반적으로 비례 면에서 佛頭에 비해 어깨의 폭이 좁고 움추려 드는 등의 요소에서 佛身面이 약해 보인다. 특히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된 옷 주름 등의 요소에서 8세기 중엽 경의 石窟庵 本尊像 보다 造成年代는 조금 떨어지는 8세기 후반 경의 佛像으로 추정되는 귀중한 文化財資料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