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문화재/佛敎 石造文化財 資料

경남 김해시 불교석조문화재

정태욱 2020. 2. 1. 19:44



경남 김해시 불교석조문화재

 

김해 구산동 마애여래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6(지정일 1979.12.29)

    소재지 : 경남 김해시 구산동 산57-1

    조성시기 : 고려시대

 

김해 서상동 석불좌상 (김수로왕 재실전 석불좌상)

    비지정 문화재

    소재지 : 경남 김해시 동상동 874-5, 범어사 포교당 연화사

    조성시기 : 미상

 

김해 미륵암 마애불

    비지정 문화재

    크기 : 현고(現高) 80cm, 어께폭 65cm

    소재지 : 김해시 동상동 874-5, 범어사 포교당 연화사

    조성시기 : 미상

 

원래 불암동에 있었는데, 남해고속도로 공사 때 파괴되어 현재 동상동의 불교 포교원 내에 옮겨져 있다. 화강암제 마애불로 안면부가 파손되어 형태는 확실치 않지만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진 모습이다. 눈은 반개(半開)하고, 짧은 목에 삼도의 흔적이 있고, 통견의 의습선은 뚜렷하나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럽다. 오른손은 노출되었으나 팔목이하는 소실되었다. 두광을 새긴 선이 희미하게 남아 있으나, 족부(足部)이하는 마멸되었다.

 

진영 봉화산 마애여래좌상(進永 烽火山 磨崖如來坐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지정일 1979.05.07)

    크기 : 높이 2.45m, 무릎높이 1.7m

    소재지 :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산3-10

    조성시기 : 고려시대

 

진례 신안리 마애삼존불상

    비지정 문화재

    소재지 : 김해시 진례면 신안리 415번지

    조성시기 : 미상

 

김해 초선대 마애여래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8(지정일 1974.02.16)

    크기 : 높이 5.1m, 어깨폭 2.5m, 불신 4.3m, 대좌 0.8m

    소재지 : 김해시 안동 685-1 초선대 금선사

    조성시기 : 고려시대

 

김해 유하리 마애여래좌상 2

    비지정 문화재

    소재지 : 경남 김해시 구산동 232 (가야의길 190) 국립김해박물관

    조성시기 : 고려시대

 

현재 국립김해박물관 정문 앞 도로 건너편 화장실 왼쪽 옆에 있음.

 

김해 흥부암 석조보살좌상(金海 興府庵 石造菩薩坐像)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9(지정일 2009.03.05)

    소재지 : 경남 김해시 외동 산2 흥부암

    조성시기 : 조선시대

 

김해 모은암 석조아미타여래좌상(金海 母恩庵 石造阿彌陀如來坐像)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75(지정일 2009.08.06)

    크기 : 전체높이 55.7cm, 무릎폭 27.3cm,

    소재지 : 경남 김해시 생림면 마사로 36-228

    조성시기 : 조선시대

 

이 상의 크기는 촉의 높이를 빼면 39cm의 소형상으로, 특이하게 불상저부에 좌우 25.5cm, 전후 20.7cm의 둥근 촉을 만들고, 불석으로 대좌를 제작해 그 상면을 촉과 비슷한 크기의 홈을 파 불상을 끼우도록 제작하였으며, 암자용 독존으로 아담하게 조성된 작품이다.

불상바닥 중앙에는 원추형으로 파낸 복장공이 있으며, 19cm 정도 깊이의 복장공 내부에는 1.5cm 폭의 조각도로 내면을 깎아낸 흔적이 있다. 개금 중수 당시에는 후령통과 경전인쇄물 등이 약간 남아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모두 사라진 상태이다.

 

김해 은하사 응진전 석조석가모니삼존불 및 존상일체 (21)

    비지정 문화재

    소재지 : 경남 김해시 삼방동 882, 은하사 응진전

    조성시기 : 1688

 

김해 은하사 동은당 사리탑(金海 銀河寺 東隱堂 舍利塔)

    비지정 문화재

    소재지 : 경남 김해시 삼방동 882, 은하사 경내

    조성시기 : 1921

 

김해 은하사 오층석(金海 銀河寺 五層石塔)

    비지정 문화재

    크기 : 전체높이 460cm

    소재지 : 경남 김해시 삼방동 882, 은하사

    조성시기 : 근대

 

김해 은하사 석탑(金海 銀河寺 石塔)

    비지정 문화재

    크기 : 전체높이 187cm

    소재지 : 경남 김해시 삼방동 882, 은하사

    조성시기 : 미상

 

김해 은하사 석탑옥개석(金海 銀河寺 石塔屋蓋石)

    비지정 문화재

    소재지 : 경남 김해시 삼방동 882, 은하사

    조성시기 : 미상

 

김해 은하사 중수비(金海 銀河寺 重修碑)

    비지정 문화재

    소재지 : 경남 김해시 삼방동 882, 은하사

    조성시기 : 1932

 

김해 진례면 초전리 석조불상(미륵불)

    비지정 문화재

    소재지 : 경남 김해시 진례면 초전리 662-13

                현대효천오일뱅크 시멘트 담장 옆에 있음

    조성시기 : 미상


광배 뒷면에 불좌상이 새겨져 있음

 

김해 영구암 삼층석탑(金海 靈龜庵 三層石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73(지정일 2009.08.06)

    소재지 경남 김해시 삼방동 874 영구암 (신어산길 169)

    조성시기 : 고려 말기

 

김해 안곡리 삼층석탑 (金海 安谷里 三層石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지정일 1972.02.12)

    소재지 : 경남 김해시 한림면 안곡로 492번길 87 (안곡리 164)

    조성시기 : 고려시대

 

김해 흥덕사 신천 망월석탑 (金海 興德寺 新泉 望月石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62(지정일 지정일 1997.12.31)

    소재지 : 경남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 471 흥덕사

    조성시기 : 고려 후기

 

망천부락의 남쪽 탑골 암자터에 있던 3층석탑으로 망월석탑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는데 고려후기의 것으로 추측된다. 1982년 흥덕사를 세워 석탑을 경내에 옮겼으며 현재 2층만이 잔존하고 있다. 일명 사왕도석탑이라고도 한다. 허왕후의 고향을 기리기 위해서 망월석탑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고려후기 석탑으로 추정된다.

 

김해 허황후능 파사석탑 (金海 許皇后陵 婆娑石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7(지정일 1996.03.11)

    소재지 : 경남 김해시 가락로 190번길 1, 허황후능

    조성시기 : 미상

 

수로왕비 허황후, 黃玉(32-189)東漢建武 24년 갑신에 서역 아유타국에서 머나먼 바다를 건너올 때 파도신의 노여움을 잠재우기 위해 함께 싣고 왔다고 삼국유사 등 고서에 기록되어 있다. 파사석탑은 옛 호계사(虎溪寺) 자리에 있던 것을 김해부사 정현석(鄭顯奭, 1817-1899)이 본 탑은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것이니 허왕후 곁에 두어야 한다며 옮겼다고 한다.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이 시집을 오면서 불교를 전래하고, 형제인 허보옥 즉, 장유화상이 가락국에 와서 大國僧으로 활약하였다고 한다. 탑은 네모진 사면의 오층이고 조각이 매우 기이하며 돌은 조금 붉은 빛의 옥문무늬가 있고 질도 달라 우리나라의 석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닭 벼슬피에 가루로 만든 파사석과 일반석으로 실험한 결과 파사석 부분은 물기가 계속 남아 있는 반면 일반석은 건조하여 말라버렸다고 한다.

 

호계사(虎溪寺)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 일연(一然, 1206-1289)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한다. “삼국유사권 제3 탑상(塔像) 편에는 호계사에 파사석탑이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이 석탑은 서기 48년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許黃玉)이 서역의 아유타국(阿踰陀國)에서 배에 싣고 온 석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의 내용에 의하면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은 부모의 명을 받들어 뱃길로 동쪽으로 향하였다. 항해 도중 수신(水神)의 노여움에 막혀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 이러한 사정을 부왕(父王)에게 말하였다. 부왕이 파사석탑을 싣고 가라고 명하니 허황옥은 바다를 쉽게 건널 수 있었다. 이에 가락국 남쪽 해안에 정박하였는데 허황옥이 붉은 돛, 붉은 깃발, 주옥 등 아름다운 것을 싣고 정박한 곳이기에 배가 닿은 곳을 주포(主浦)라고 불렀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수로왕이 허황옥을 맞이하고 함께 나라를 다스린 것이 150여 년이었다고 한다. 이때까지 해동에 아직 절을 세우고 불법을 받드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사찰은 452, 8대 질지왕(銍知王) 2년에 이르러서야 세워졌다. 질지왕이 창건하고 파사석탑을 봉안한 곳이 호계사로 여겨진다. 탑은 45층으로 되어 있고, 그 조각이 매우 기묘했다고 한다. 돌에 미세한 붉은 반점 색이 있고 그 질이 무르니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파사석탑은 고려시대에 일연이 삼국유사를 찬술할 때까지도 존재했다고 한다. 그 뒤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현재 파사석탑으로 불리는 탑은 김수로 왕비릉 경내에 있는데, 수로왕비가 이곳에 올 때 타고 온 배의 닻돌이라고도 한다.

 

김해 김수로왕릉 귀부(金海 金首露王陵 龜趺)

    비지정 문화재

    소재지 : 경남 김해시 가락로 93번길 26, 김수로왕릉

    제작시기 :

 

김해 김수로왕릉 연화대석(金海 金首露王陵 蓮花臺石)

    비지정 문화재

    소재지 : 경남 김해시 가락로 93번길 26, 김수로왕릉

    제작시기 :

 

김해 동림사 석탑재(金海 東林寺 石塔材)

    비지정 문화재

    소재지 : 경남 김해시 삼방동 산120-1, 동림사

    조성시기 : 고려시대

 

김해 백운암 승탑(金海 白雲庵 僧塔)

    비지정 문화재

    크기 : 전체높이 141cm

    소재지 : 경남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 산 175

    조성시기 : 조선 후기

 

김해 백운암 건륭 48년명 마애비 (金海 白雲庵 乾隆四十八年銘 磨崖碑)

    비지정 문화재

    크기 : 114×63cm

    소재지 : 경남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 산 175, 백운암 경외 [답사]

    제작시기 : 1783

 

백운암은 가락국 시대에 무척대사가 이곳에 머물러 창건했다는 설과 허황후의 오빠이자 불교를 최초로 유입시켰다고 전하는 장유화상이 김수로왕 당시 세웠다는 설이 전해져 오고 있으나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그 뒤의 사적은 전하는 바가 없으나 조선시대에 와서 1801(순조 1) 지방의 유지인 김두영(金斗榮)과 송유철(宋有轍)의 도움으로 중수하였다고 하며 1890(고종 27) 덕송(德松)스님이 칠성각 등을 중건했다고 전해온다. 현재의 가람은 최근에 조성된 것들이다.

 

김해 장유암 장유화상사리탑(金海 長遊庵 長遊和尙舍利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1(지정일 1983.07.20)

    소재지 : 경남 김해시 대청계곡길 170-563 (대청동, 장유암)

    조성시기 : 고려 말-조선 초

 

이 사리탑은 가락국 수로왕의 처남인 장유화상(허보옥)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석조물로서 가락국 제8대 질지왕(451-492) 재위 중 장유암 재건당시 세워진 것으로 전하고 있다. 1500여년의 오랜 세월 속에 여러 번의 전환으로 암자와 관계 유물들은 거의 소실되고 사리탑만이 있었다고 하나 현존 사리탑은 그 제작 수법으로 보아 고려 말-조선 초의 작품으로 보인다.

19155월 선포화상의 원력으로 현재의 장유암 사옥이 중건되면서 탑의 보호를 위한 석조 난간을 설치하고 아울러 가락국사 장유화상사적비를 건립하여 불모산 개창주의 뜻을 후세에 기리도록 하였으며, 상륜부 일부는 결실된 것을 보수하였다.

 

삼국유사등의 기록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장유화상의 행적이 설화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장유화상(長遊和尙)은 허왕후의 오빠로 보옥선인(寶玉仙人)이라고도 하며 수로왕의 7왕자를 데리고 가야산에 들어가 도를 배워 신선이 되었으며 지리산에 들어가 7왕자를 성불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리산 반야봉 칠불사에 전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왕후는 모두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그 중 큰아들 거등은 왕위를 계승하고, 둘째와 셋째는 어머니 성을 따라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 나머지 일곱 왕자는 장유화상을 따라 가야산에 들어가 3년간 불법을 수도했다. 왕후가 아들들이 보고 싶어 자주 가야산을 찾자 장유화상은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왕자들을 데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왕후는 다시 지리산으로 아들들을 찾아갔으나 여전히 장유화상에 의해 제지당하였다. 그 후 다시 지리산을 찾은 왕후를 장유화상은 반가이 맞으며 아들들이 성불했으니 만나라고 하였다.

 

그때 어머니, 연못을 보면 저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라는 소리가 들려 연못(影池)을 보니 황금빛 가사를 걸친 금왕광불(金王光佛), 왕상불(王相佛), 왕행불(王行佛), 왕향불(王香佛), 왕성불(王性佛), 왕공불(王空佛) 등 일곱 생불(生佛)이 공중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 후 김수로왕은 크게 기뻐하며 아들들이 공부하던 곳에 칠불사를 세웠다.

 

허보옥은 동생의 신행길을 함께 왔는데, 산에 들어가 부귀를 뜬구름과 같이 보며 불도(佛道)를 설경하고 산을 떠나지 않았다고(長遊不返) 하여 장유화상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가락국기에는 장유화상의 허왕후 신행길 수행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에 대한 기록은 김해 은하사 취운루 중수기(銀河寺翠雲樓重修記)에 적혀있지만 역시 후대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장유화상에 대한 설화는 허왕후 도래설화의 불교적인 윤색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해 선지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金海 仙地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33(지정일 2013.01.03)

    소재지 : 경남 김해시 주촌면 서부로1743번길 28, 선지사 무량수각

    조성시기 : 만력 33(1605)

 

복장 내부에서 나온 발원문을 통해 1605년에 조각승 원오(元悟), 충신(忠信), 청허(淸虛), 신현(信玄), 신일(神釼) 등이 조성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서체로 조성 연대와 시주자 목록을 기록한 발원문은 세로 39.8, 가로 152.5크기이다. 이외에도 범자기원문(梵字祈願文; 산스크리트어로 기록한 기원문) 2매와 경문(經文: 불경의 문구를 기록한 글) 1매가 복장에서 함께 나왔다.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전반에 충청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조각승 원오는 1599년에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平昌 上院寺 木造文殊童子坐象) 개금에 참여하였고, 1606년에는 공주 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公州 東鶴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조성에 참여한 기록이 남아있다. 수조각승을 맡은 불상으로는 1605년에 제작한 논산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論山 雙溪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익산 관음사 목조보살입상(益山 觀音寺 木造菩薩立像) 등이 있다. 원오의 작품은 17세기 전반에 활동한 각민(覺敏), 청허(淸虛) 등의 불상 조각에 영향을 미쳤다. 

목조로 제작한 불상의 높이는 49.5이다.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입체감과 양감을 살린 조각 수법을 보여준다. 대의를 양 어깨에 걸치고 있으며, 몸통에 비해 팔과 다리는 가늘고 짧은 편이다. 영락 장식은 걸치고 있지 않으며, 장식 없이 단순한 의복만을 두르고 있다. 신체에 비해 과도하게 큰 머리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이 드러나며, 이목구비는 매우 뚜렷하다. 통통한 양 볼, 오똑한 코, 옆으로 긴 눈매는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내며, 귓불이 두껍고 유난히 큰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다리 위에 얹었으며,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동작을 취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조각승 원오가 제작한 불상 중 현재까지 전해오는 드문 사례로, 17세기 전반 불교 조각 유파와 양식을 연구하는데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김해 연화사 목조석가여래삼존불좌상(金海 蓮華寺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82(지정일 2015.06.11)

    소재지 : 경남 김해시 구지로 180번길 23-1(동상동) 연화사

    조성시기 : 1715

 

김해 연화사(蓮華寺)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1m 미만의 작은 불상으로 김해 연화사(蓮華寺) 법당에 봉안되어 있다. 불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하면 원래 함양 장수사(長水寺)에 있었던 것이며, 1715년 조각승 충옥(沖玉)을 비롯한 4명의 조각승 등에 의해 제작되었음이 밝혀졌다. 조각승 충옥(沖玉)은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조각승으로서 그가 제작한 거의 마지막 단계의 작품에 해당 한다. 이 불상은 충옥(沖玉)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점에서 조선후기 지역적 유파 연구와 조선시대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